
질문은 답을 위한 수단인가

AI가 답을 빠르게 제공하는 환경에서, 질문은 점점 자동화되고 있다. 그러나 답이 쉬워질수록, 무엇을 묻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생겼다. AI는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며, 질문이 설정한 틀 안에서만 반응한다. 이 사실은 질문이 단순한 입력이 아니라 사고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다빈치, 소크라테스, 파인만, 아인슈타인이 보여준 질문 방식은 답을 얻기보다 사고를 확장하기 위한 태도에 가까웠다. 나는 이들의 방식을 바탕으로 질문을 관찰, 의심, 분해, 전환의 흐름으로 재구성했고, 고령화라는 현실 문제에 이를 적용하며 질문이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과정을 확인했다. 결국 질문은 생각을 대신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생각을 시작할 것인지는 질문이 결정한다.
1. 도입: 답변의 홍수 속에서 사라진 질문
인공지능은 이제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일상적인 도구가 되었다. 질문을 입력하면 즉각적인 답변이 돌아오고,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답변이 넘쳐날수록 한 가지 질문은 오히려 흐려진다. 우리는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질문하고 있는가.
AI가 생성하는 답변의 질은 모델의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사고하지 않으며, 사용자가 던진 질문의 틀 안에서 언어를 생성한다. 다시 말해 질문은 단순한 입력값이 아니라 사고의 방향을 설정하는 장치다. 그렇다면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한 수단에 머무르는 것일까, 아니면 사고를 설계하는 태도로 확장될 수 있을까. 이 글은 그 물음에서 출발한다.
2. 문제 이해: 질문이 사고의 틀이 되는 이유
AI는 주어진 질문을 이해한 뒤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다. 문맥상 가장 그럴듯한 다음 문장을 확률적으로 생성할 뿐이다. 따라서 AI의 답변은 질문이 설정한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질문이 단순할수록 사고는 얕아지고, 질문이 정교할수록 사고의 깊이는 확장된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더 이상 정보 요청이 아니라, 사고의 틀이 된다. 우리는 AI에게 사고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사고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3. 참고 자료: 질문을 ‘태도’로 바라보다
본 글은 EBS 지식채널e 「천재들의 질문법」 시리즈를 참고하되, 각 인물의 질문 방식을 단순한 대화 기법이 아니라 사고 태도로 재구성한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네 명의 사상가는 질문을 통해 사고의 주도권을 지켜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4. 분석: 네 명의 사상가, 네 가지 질문 태도
4.1 레오나르도 다빈치 – 관찰과 연결
다빈치는 넓고 깊은 관찰을 통해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했다. 그는 결론을 서두르기보다 현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집요하게 바라보며, 예술과 과학을 가로질러 통합적 질문을 던졌다.
4.2 소크라테스 – 정의와 전제 의심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전제를 드러내고 뒤집는 방식으로 사고를 확장했다.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정의되지 않은 개념을 명료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4.3 리처드 파인만 – 분해와 검증
파인만은 끊임없이 “왜?”를 묻고, 어린아이에게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사고를 분해함으로써 앎과 모름을 구분했다. 질문은 이해를 검증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었다.
4.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전환과 가정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논리와 가정을 의심하고 상상함으로써 사고의 틀 자체를 전환했다. 질문은 답을 찾는 행위가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출발점이었다.
5. 나만의 관점
질문을 설계하는 네 단계의 사고 흐름
나는 질문을 즉흥적으로 던지기보다, 하나의 사고 과정으로 설계하려 한다.
첫째, 관찰이다. 무엇이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를 깊게 관찰하며, 성급한 해석을 유보한다.
둘째, 정의와 의심이다. 관찰한 바를 토대로 정의를 내리되, 그 정의가 편협하지 않은지, 잠재된 전제가 개입되지는 않았는지 의심한다.
셋째, 분해와 검증이다. ‘왜?’라는 질문을 던져 생각을 최소 단위까지 분해하고, 스스로 설명 가능한지 점검한다.
마지막으로, 전환과 가정이다. 분해된 생각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부정하며 가정을 뒤바꿔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 네 단계는 질문을 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고를 확장하고 재구성하는 도구로 만든다.
적용
고령화 문제를 하나의 답으로 해결하기보다, 질문의 방식에 따라 어떻게 다른 사고의 경로가 열리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동일한 주제를 두고 질문만 달리 던졌을 때, 사고의 방향은 분명히 달라진다.
Q. 지금 사회에서 고령화는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A. 고령화는 단순히 노인의 수가 늘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노동 인구 감소, 돌봄 구조의 변화, 지역 공동체의 약화 등 여러 변화가 동시에 발생하는 과정이다.
Q. 우리는 고령화를 어떤 문제로 정의하고 있는가?
A. 고령화는 흔히 부양 부담의 증가나 재정 압박의 문제로 정의된다. 이 정의 안에서는 고령자는 보호의 대상이자 비용으로 인식된다.
Q. 왜 고령화는 사회적 부담으로 받아들여지는가?
A. 연금 제도, 의료 시스템, 노동 시장이 특정 연령 구조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인구 비율의 변화가 곧 부담으로 인식된다.
Q. 그렇다면 고령자가 반드시 경제 활동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A. 그렇지 않다. 기존의 전제를 바꾼다면, 고령 인구는 경험과 숙련을 축적한 자원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고령화 자체보다,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구조에 있다.
이와 같은 질문의 흐름은 고령화에 대한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같은 문제를 관찰하고, 정의하고, 분해하고, 다시 가정하는 과정 속에서 사고의 범위를 넓힌다. 질문이 달라질 때, 문제는 해결 이전에 먼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6. 결론: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AI는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생성할 수 있지만, 그 답변이 언제나 정확하거나 진실하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할루시네이션 현상은 인공지능이 사고의 주체가 아니라 언어 생성 도구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결국 AI의 답변을 어디까지 신뢰할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인간의 판단에 달려 있다.
질문은 사고를 대신해주지 않는다. 다만 사고가 시작될 수 있는 방향을 만든다.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더 많은 답을 얻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스스로 책임지는 힘일 것이다.